선생님 이야기

생각의 틀을 깨는 첫걸음, 피해야 하는 일기장 시리즈 2! “엄마, 꼭 반성해야 해요?”

김미경
김미경 선생님

2026. 11. 05 19:08

아이 입에 들어가는 건 생산지부터 시작해서 농약을 쳤는지 안쳤는지 깐깐하게 따지면서 일기장은 그냥 사주었습니다.

일기장 형식이 일기 쓰는 당사자에게 심리적인 벽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몰랐으니까요.

그러나 다행히도 아이와 함께 일기를 쓰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행동과 말을 통해 배운게 너무 많았으니 자식이 부모를 키운 셈이지요.

비단 일기뿐만 아니라 육아 전반에 걸쳐서도 부모가 아이를 키운다는 말은 최소한 제게는 틀린말입니다.

 

지난 글에 이어“생각의 틀을 깨는 첫걸음, 피해야 하는 일기장 시리즈 2” 이어갑니다.

아직 시리즈 1, 읽지 않으셨다면 함께 읽어주세요.

저는 24년 동안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일기 쓰는 시간은 제겐 치유의 시간입니다.

저처럼 아들과 딸도 일기장을 벗 삼아 감정을 털어놓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매일 일기를 쓸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러나 제 일기장만 고를 줄 알았지 아이들 일기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선택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문구점에서 파는 일기장 중 하나를 선택하게 했을 뿐, 일기장을 꼼꼼하게 살펴보면서 어떻게 구성이 되어있고

이런 구성들이 아이의 사고를 얼마나 가둘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초기에 제가 선택했던 일기장은

일기를 다 쓰면 가장 아래쪽에 “오늘의 착한 일, 오늘의 반성, 오늘 할 일, 내일 할 일” 을 쓰는 칸이 있었습니다.

얼마 전 문구점에 들러서 요즘은 어떤 일기장을 파는지 구경 한 번 해보았습니다.

형식이 조금 차이가 있지만 여전히 다양한 틀이 있는 일기장이 많더라고요.

 

“일기 다 썼는데 또 써야 해요?”

아들의 이 말 한마디 덕분에 일기장 구성을 다시 한번 보게 되었습니다.

아이들 입장에서 뭔가 쓰라는 칸을 보면 꼭 채워 넣어야 한다는 부담이 생기게 마련이고

아무것도 쓰지 않고 남기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안 써도 괜찮아" 라고 말을 해도 빈칸으로 비워두는 것이 마치 자신이 성실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가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의 중요한 일”

오늘 하루 지내면서 나름 기억하고 싶은 내용, 중요하다고 생각한 내용을 겨우 끄집어서 썼는데

또“중요한 일” 을 쓰라고 네모 칸까지 떡하니 만들어 놓았으니 일기 쓰기를 제대로 하기도 전에 피로감을 느끼지 않을까요?

“오늘의 착한 일”

도대체 착한 일의 기준은 뭘까요?

학교 잘 가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밥 잘 먹는 것 자체가 충분히 착한 일 아닐까요?

자신의 착함을 다시 꺼내 증명해야 한다면 일기 쓰기가 얼마나 고역 쓰기가 될까요?

 

“오늘의 반성”

아들의 한 마디,“엄마, 꼭 반성해야 해요?”

반성할게 없는데 반성을 짜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일기는 반성하기 위해 쓰는 글일까요? 반성을 강요 당하는 느낌이 드는데 과연 마음 편히 일기나 쓸 수 있을까요?

 

일기장 틀에 얽매어 아이 말을 귓등으로 듣고 “칸 있으면 다 써야지. 괜히 있는 게 아니지.”

제가 그랬다면 아이는 7년 동안 꾸준히 일기를 쓰지 않았을거라 생각합니다.

대신“오늘의 착한 일, 중요한 일, 오늘의 반성, 내일 할 일” 칸을 부모가 써주는 공감의 댓글로 채웠습니다.

 

“오늘의 착한 일, 오늘의 반성, 오늘 할 일, 내일 할 일”을 쓰는 칸은 친절을 가장하지만

사실 아이들의 생각을 제한하는 보이지 않는 벽이라 생각합니다.

일기 쓰기 자체를 재미없게 만드는 틀이라 생각합니다.

엄마 잔소리를 다 듣고 상황이 끝났나 싶었는데 바로 등 뒤에서“그리고 아까...”하면서 또 잔소리 이어가는 느낌에 비유하고 싶네요.

시댁에 가서 열심히 일을 거들었는데

“며느라기야 고생했다. 그런데 이것도 잊지 말아야지. 네가 잘못한 것도 반성해보고 다음 계획도 세워 보고....”라고 한다면

시댁에 가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지 않을까요?

 

그러니 형식이나 틀 대신 오늘의 내 생각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부모가 정해 놓은 답,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 속에 아이 멱살 잡고 끌고 가고 있는 건 아닌지 한 번쯤 돌아봤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에는 일기장 시리즈 마지막, “생각의 틀을 깨는 첫걸음, 피해야 하는 일기장 시리즈 3”이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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