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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틀을 깨는 첫걸음, 피해야 하는 일기장 시리즈 1- “엄마, 오늘 날씨는 선선했는데 어느 그림에 동그라미 해야 해요?”
7년 동안 아이 일기에 댓글을 쓴 엄마이자 일기쓰기 수업을 진행하는 강사의 경험을 기반으로 “피해야 하는 일기장”에 대한 생각을 시리즈로 이어가겠습니다. 그림으로 그려진 날씨 칸, 대부분 아이들이 쓰는 일기장 형식입니다. 해님이 그려져있으니 덥다는 의미겠고 우산이 그려져있으니 비가 왔다는 뜻이겠고 구름은 흐리고 눈사람은 눈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해님과 우산, 구름, 눈사람 자체가 날씨일까요? 세상 모든 아이들이 일기장에 똑같이 동그라미로 표시한다면 너무 개성없지 않을까요? 설령 그렇다 쳐도 날씨를 칼로 무 자르듯 네 가지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엄마, 오늘 날씨는 선선했는데 어느 그림에 동그라미 해야 해요?” 아차!! 아이 일기에 댓글을 쓰면서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습니다. “그렇구나. 그러면 네가 생각하는 날씨를 그냥 글로 적어보자.” 1학년 아들은 “아침저녁으로 선선함”이라고 썼습니다. 그날 이후 날씨 그림에 동그라미 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대신 날씨를 자신의 생활과 느낌과 연관지어 감각적으로 썼습니다. 너무 더울 때는 “가마솥더위”라고 썼고, 덥고 습도가 높을 때 “온몸이 찐득찐득해서 불쾌한 날씨”, 비가 갑자기 내린 날에는 “아침에 맑았는데 집에 올 때는 갑자기 비가 와서 옷이 다 젖음”이라고 다양하게 표현했습니다. 아이 일기에 댓글을 쓰면서 날씨를 읽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가마솥더위”를 해님으로 퉁치기에는 너무 단순하지 않나요? 도대체 “온몸이 찐득찐득하다.”는 해, 구름, 우산, 눈사람 어느 그림에 동그라미 해야 하나요?“ 아침에 맑았는데 집에 올 때는 갑자기 비가 와서 옷이 다 젖음”을 우산에 동그라미 표시하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을까요? 날씨를 그림으로 제시해버리면 생각도 단순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쓸데없는 틀이 아이의 생각을 가둘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선하다는 날씨는 어디에 표시를 해야 해?”라는 초1 아들의 질문은 스스로를 틀에 가두지 않은 귀하고 값진 물음이라 생각해요. 아이들이 일기를 쓰면서 날씨에 동그라미 치느라 생각을 놓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주어진 날씨 그림에 동그라미를 치는 것과 날씨를 어떻게 글로 표현할까 고민하는 작은 차이가 결국 아이의 표현력에 거대한 차이를 만드니까요. 생각의 틀을 깨는 첫걸음, 피해야 하는 시리즈 2! 곧 이어갈게요.
반백 살을 바라보는 대치동 키즈가 지금의 대치동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1/ 대치동 키즈로 자랐는데, 나는 폭망했다. 주말에도 학원 보강 가느라 가족여행 한 번 제대로 못 갔다. 그렇게 공부했는데, 인생은 성적순으로 풀리지 않더라. 대치동에서 모범생이었던 친구들 중엔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아가는 친구들이 많다. 반면 학창 시절 조금 유별났던 친구들은 자기 사업을 하며 자기 길을 찾기도 했다. 물론 평범한 회사원으로 사는 게 실패라는 뜻은 아니다. 사업을 한다고 다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다. 학창 시절의 성적표가 그 사람의 평생을 결정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 그러니 대치동 키즈들아. 공부에 너무 목숨 걸지 마라. 2/ 나도 대치동에서 자라면서 세상이 참 좁았다. 주말에도 공부해야 한다고 가족여행을 포기하고, 학원 보강을 갔다. 그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조금이라도 더 공부해야 남들보다 앞서갈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아쉽다. 부모님이 조금 더 넓은 시야로 나를 키워주셨다면 어땠을까? 주말에는 가족과 여행을 다니고, 공부 말고도 네가 평생 재미있게 파고들 수 있는 것을 찾아보라고 하셨다면? 그랬다면 나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배웠을지도 모르겠다. 3/ 입시는 인생의 한 과정일 뿐이다. 죽어라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도, 결국 자기 분야에서 남들보다 뛰어난 사람이 되려면 또다시 배우고 경험을 쌓아야 한다. AI 시대에는 이 사실이 더 중요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정답을 빨리 찾는 능력만으로는 차별화하기 어려워질 테니까.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어떤 문제를 발견하는지, 배운 것을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더 중요해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공부만큼이나 공부 밖의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낯선 문화를 경험하고, 실패도 해보고, 좋아하는 것을 깊이 파고드는 시간. 그런 경험이 쌓여야 세상을 보는 눈도 생긴다. 4/ 그리고 공부만 잘하는 바보는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릴 때부터 돈 공부도 꾸준히 해라. 돈을 버는 능력과 돈을 관리하는 능력은 다르다. 열심히 일해서 월급을 받아도 소비와 자산 관리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평생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 끝날 수 있다. 돈을 어떻게 모으고, 어떻게 관리하고, 어떻게 불려 나갈지 배우는 것도 인생의 중요한 공부다. 내가 대치동 키즈로 자라며 아쉬웠던 부분을, 지금은 내 아이들에게 다르게 가르쳐주고 싶다. 영국에서 다문화 가정의 아이 둘을 키우면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성적만이 아니다. 인성과 돈 공부, 그리고 다양한 경험. 인성이 있어야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신뢰를 쌓을 수 있다. 돈을 다룰 줄 알아야 열심히 모은 자산도 지킬 수 있다. 다양한 경험이 있어야 자기에게 무엇이 맞는지 알아갈 수 있다. 5/ 아이들을 공립에서 사립으로 옮긴 것도 단순히 성적 때문만은 아니었다. 규율과 규칙이 있는 환경, 아이들의 수준과 필요에 맞춘 교육, 예체능을 포함한 다양한 활동을 경험할 수 있는 시스템이 우리 가족에게 필요했다. 집에서 모든 걸 가르칠 역량도, 공립학교에 다니면서 그 모든 활동을 따로 챙길 시간도 내게는 충분하지 않았다. 사립학교의 시스템 안에서 아이들이 공부뿐 아니라 다양한 재능을 발견하고 키울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6/ 그리고 우리는 일 년에 세 번은 꼭 가족여행을 간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직접 경험하고, 익숙한 환경 밖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라고. 아이들이 앞으로 어떤 어른으로 성장할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성적 하나에 인생을 걸게 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좋은 성적을 받는 것보다 스스로 생각할 줄 알고, 사람들과 잘 지내고, 돈을 관리할 줄 알고, 자기 삶을 꾸려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대치동 키즈로 자라며 뒤늦게 깨달은 것들을 내 아이들은, 내 학생들은 조금 더 일찍 알았으면 한다. 공부는 잘하면 좋다. 하지만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되게 하지는 마라. 너희 인생은 성적표보다 훨씬 길다.
생각의 틀을 깨는 첫걸음, 피해야 하는 일기장 시리즈 2! “엄마, 꼭 반성해야 해요?”
아이 입에 들어가는 건 생산지부터 시작해서 농약을 쳤는지 안쳤는지 깐깐하게 따지면서 일기장은 그냥 사주었습니다. 일기장 형식이 일기 쓰는 당사자에게 심리적인 벽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몰랐으니까요. 그러나 다행히도 아이와 함께 일기를 쓰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행동과 말을 통해 배운게 너무 많았으니 자식이 부모를 키운 셈이지요. 비단 일기뿐만 아니라 육아 전반에 걸쳐서도 부모가 아이를 키운다는 말은 최소한 제게는 틀린말입니다. 지난 글에 이어“생각의 틀을 깨는 첫걸음, 피해야 하는 일기장 시리즈 2” 이어갑니다. 아직 시리즈 1, 읽지 않으셨다면 함께 읽어주세요. 저는 24년 동안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일기 쓰는 시간은 제겐 치유의 시간입니다. 저처럼 아들과 딸도 일기장을 벗 삼아 감정을 털어놓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매일 일기를 쓸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러나 제 일기장만 고를 줄 알았지 아이들 일기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선택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문구점에서 파는 일기장 중 하나를 선택하게 했을 뿐, 일기장을 꼼꼼하게 살펴보면서 어떻게 구성이 되어있고 이런 구성들이 아이의 사고를 얼마나 가둘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초기에 제가 선택했던 일기장은 일기를 다 쓰면 가장 아래쪽에 “오늘의 착한 일, 오늘의 반성, 오늘 할 일, 내일 할 일” 을 쓰는 칸이 있었습니다. 얼마 전 문구점에 들러서 요즘은 어떤 일기장을 파는지 구경 한 번 해보았습니다. 형식이 조금 차이가 있지만 여전히 다양한 틀이 있는 일기장이 많더라고요. “일기 다 썼는데 또 써야 해요?” 아들의 이 말 한마디 덕분에 일기장 구성을 다시 한번 보게 되었습니다. 아이들 입장에서 뭔가 쓰라는 칸을 보면 꼭 채워 넣어야 한다는 부담이 생기게 마련이고 아무것도 쓰지 않고 남기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안 써도 괜찮아" 라고 말을 해도 빈칸으로 비워두는 것이 마치 자신이 성실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가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의 중요한 일” 오늘 하루 지내면서 나름 기억하고 싶은 내용, 중요하다고 생각한 내용을 겨우 끄집어서 썼는데 또“중요한 일” 을 쓰라고 네모 칸까지 떡하니 만들어 놓았으니 일기 쓰기를 제대로 하기도 전에 피로감을 느끼지 않을까요? “오늘의 착한 일” 도대체 착한 일의 기준은 뭘까요? 학교 잘 가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밥 잘 먹는 것 자체가 충분히 착한 일 아닐까요? 자신의 착함을 다시 꺼내 증명해야 한다면 일기 쓰기가 얼마나 고역 쓰기가 될까요? “오늘의 반성” 아들의 한 마디,“엄마, 꼭 반성해야 해요?” 반성할게 없는데 반성을 짜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일기는 반성하기 위해 쓰는 글일까요? 반성을 강요 당하는 느낌이 드는데 과연 마음 편히 일기나 쓸 수 있을까요? 일기장 틀에 얽매어 아이 말을 귓등으로 듣고 “칸 있으면 다 써야지. 괜히 있는 게 아니지.” 제가 그랬다면 아이는 7년 동안 꾸준히 일기를 쓰지 않았을거라 생각합니다. 대신“오늘의 착한 일, 중요한 일, 오늘의 반성, 내일 할 일” 칸을 부모가 써주는 공감의 댓글로 채웠습니다. “오늘의 착한 일, 오늘의 반성, 오늘 할 일, 내일 할 일”을 쓰는 칸은 친절을 가장하지만 사실 아이들의 생각을 제한하는 보이지 않는 벽이라 생각합니다. 일기 쓰기 자체를 재미없게 만드는 틀이라 생각합니다. 엄마 잔소리를 다 듣고 상황이 끝났나 싶었는데 바로 등 뒤에서“그리고 아까...”하면서 또 잔소리 이어가는 느낌에 비유하고 싶네요. 시댁에 가서 열심히 일을 거들었는데 “며느라기야 고생했다. 그런데 이것도 잊지 말아야지. 네가 잘못한 것도 반성해보고 다음 계획도 세워 보고....”라고 한다면 시댁에 가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지 않을까요? 그러니 형식이나 틀 대신 오늘의 내 생각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부모가 정해 놓은 답,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 속에 아이 멱살 잡고 끌고 가고 있는 건 아닌지 한 번쯤 돌아봤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에는 일기장 시리즈 마지막, “생각의 틀을 깨는 첫걸음, 피해야 하는 일기장 시리즈 3”이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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