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글쓰기 울렁증 단번에 고치는 방법은?
- ‘서술’보다 ‘묘사’가 중요한 이유
- 일상 속에 숨어있는 글쓰기 비결
- 정탄쌤의 글쓰기 주제 정하는 꿀팁!
- 롱런하는 학습을 위한 마음가짐은?
Editor Jeong Tan(정탄) Career 전직 14년 차 초등 교사, 현 제이티스쿨 대표
안녕하세요, 전직 14년 차 초등 교사이자, 현재 꾸그에서 다양한 인문학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정탄입니다. 오늘은 초등학생 글짓기 가이드를 제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1. 글쓰기 공포와 울렁증 없애기
저도 초등학교 시절엔 글쓰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얀 A4 종이와 몽당연필, 그리고 선생님의 한마디. “자기 경험을 담아서 글을 써 보아라.”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에 가서 지루한 수업을 듣고, 급식만 먹는 일상에 대해 어떤 경험을 쓰라는 건지 막막했습니다.
맞춤법 신경 써라, 서론과 본론이 어떻다는 둥, 근거를 대야 한다는 둥 누구 하나 명확히 안내해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당연히 글은 타고난 글쟁이들이 쓰는 것이며, 책은 TV, 라디오 작가들이 쓰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글쓰기에는 왕도가 없다고 하던데, 그냥 왼쪽으로 시작해서 오른쪽으로 써내려 가는 게 방법이라던 선생님의 대답은 너무나 무책임하고 성의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저도 교사가 되니 “글을 쓸 때는 자기 경험을 담아서 솔직하게 쓰는 거야”라며 똑같이 말하고 있더군요. 그 말을 내뱉는 제 혀와 입술이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막상 해보면 알겠지만, 처음 글을 쓰려고 하면 눈앞에 있는 A4 용지가 엄청나게 커 보입니다. 어린이 중 상당수가 절반을 채우는 것도 어려워합니다. 머릿속은 만리장성처럼 장황한데, 어째서인지 손은 머리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누구나 다 아는, 자기 경험을 담아서 솔직하게 쓰라는 말은 왠지 ‘운동은 몸에 좋으니까 매일 30분씩 하라’는 말과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문제는 ‘운동을 해야 한다’가 아니라 ‘운동을 어떻게 하는가?’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글쓰기에 대한 과장된 공포와 울렁증을 극복하고, 내 생각을 말하듯 손으로 써 내려갈 수 있을까요?
2. 서술 대신 묘사 위주의 표현 사용하기
상황을 설명해 주는 게 서술이라면 사진처럼 한눈에 보이는 게 묘사입니다. ‘매일 음악을 들으며 조깅을 한다’는 서술 문장이고, ‘집에 돌아오면 신상 러닝화를 신고 이어폰을 꽂은 채로 BTS의 <봄날>을 흥얼거리며 오산천 1바퀴를 쉬지 않고 달린다’는 묘사 문장입니다.
서술은 한 문장으로 단박에 상황을 정리할 수 있어 문장에 속도가 붙습니다. 글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길게 묘사하기보다는 재빠르게 정리해서 끝내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조깅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달리는 모습이 마치 실제로 눈에 보이는 듯한 ‘묘사’입니다.
‘오늘 배가 고파서 치킨을 시켰는데, 배달이 늦어져서 치킨이 다 식어서 왔다. 그래서 왕짜증이 났다.’ – 서술형 글 예시
‘밤에 혼자 먹는 치킨처럼 달콤한 게 없다. 핸드폰을 열고 배달 앱으로 뿌링클 치킨을 결제했다. 배달비 2,000원은 가슴 아프지만 배달 아저씨도 먹고 살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런데 아무리 초인종 소리를 기다려도 울리지 않았다. 끝내 내가 받은 치킨은 과자처럼 바삭바삭하기는커녕 다 퍼진 수제비 같았다. 다신 시키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입으로 꾸역꾸역 넣었다.’ – 묘사형 글 예시
묘사는 읽는 이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습니다. 독자는 묘사를 통해 공감을 하고 ‘진짜로 했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묘사는 독자만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쓰는 사람 본인을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글쓴이도 자신을 성찰하기 위해서는 거리를 두고 대상을 그리는 묘사가 필요합니다.
서술과 묘사를 번갈아 쓰다 보면, 때로는 속도를 내고 때로는 장면을 그려 주어 글에 탄력이 생깁니다. 마치 끊임없이 입에 넣게 되는 맛있는 ‘단짠단짠’ 음식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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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일상생활과 관련된 비유적 표현 사용하기
‘비유’라 함은 두 사물 사이에 공통점을 빗대어 표현하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꾀꼬리 같은 목소리, 앵두 같은 입술, 바다와 같은 마음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자 친구에게 연애편지를 써본다고 가정해 볼까요?
‘나는 너를 좋아해. 왜냐하면 너는 앵두 같은 입술, 꾀꼬리 같은 목소리, 바다처럼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까.’
글을 배우는 어린이가 쓴 글이라면 감동이었겠지만, 어른의 연애에서 저 정도 문장으로는 이성의 마음을 사로잡기는커녕 평생 모쏠로 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떻게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해야 할까요?
한 마디로 얘기하자면, 자기 이야기를 써야 합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 보는 겁니다. 예를 들어 짜증, 분노, 공포 등의 추상적인 감정으로는 언어의 ‘맛’을 느낄 수 없습니다.
제가 학생에게 “언제 가장 공포스럽니?”라고 물어보았을 때, 돌아온 솔직한 대답은 “몰래 컴퓨터 하고 있는데 엄마가 뒤에 서 있을 때요.”였습니다. 이때 저는 크게 깨달았습니다. ‘모두가 공감하는 재미있는 글이 어려운 게 아니구나!’하고요.
이를 바로 수업에 적용해 보았습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언제 기쁘고 행복한지, 혹은 언제 화가 나고 억울한지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것입니다.
‘시간표에 없는 체육을 선생님이 갑자기 하자고 할 때’(기쁨)
‘친구랑 같이 떠들었는데 나만 혼낼 때, 또 일렀다고 더 혼날 때’(억울)
‘아침에 카레 먹고 왔는데, 급식에 또 카레 나올 때. 또 저녁에 남은 카레 먹을 때’(짜증)
‘학원 땡땡이치고 조마조마했는데 안 걸렸을 때’(안도)
‘엄마가 모임 간 날 아빠가 치킨을 시켜줬을 때’(기쁨)
기막히게 참신한 표현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책에 멋진 인용문을 적고, 유명인의 글귀를 퍼 나르며 몰래 훔쳐서 사용했던 제가 한없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처음부터 <토지>의 박경리처럼, <개미>의 베르나르 베르베르처럼, 혹은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대단한 사람들을 흉내 낼 필요 없습니다.
이는 마치 이제 막 수영을 시작한 꿈나무에게 올림픽 선수처럼 훈련하라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우린 물살을 가르며 기록을 단축하며 경쟁에서 이기는 올림픽 선수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물에 뜨고 내 몸 하나 지키고 건강을 위해서 수영을 하면 그뿐입니다!
일단, 그저 내 경험과 내 이야기를 쓰면 됩니다. 아이들처럼 감정에 솔직하게, 쉬운 방식으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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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이들이 원하는 주제, 일상적인 주제 선택하기
초등학생 글쓰기 교육이 ‘아이들의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에 집중한다면, 정작 어른들의 글쓰기 교육은 ‘어른이 아이에게 가르치고 싶어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환경보호’, ‘민족공동체’, ‘나라 사랑’ 등 듣기만 해도 아이들의 일상과 거리가 꽤 먼 주제들이죠. 제가 학생이라도 당연히 여기서부터 흥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초등학생 글짓기는 그저 대회에서 상을 받기 위한 수단일 뿐이며, 수상자 또한 정해져 있다는 느낌을 주는 현실입니다.
수학을 잘하는 사람, 운동을 잘하는 사람처럼 글쓰기를 잘하는 사람도 따로 있다는 생각, ‘글쓰기는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잔치’라는 생각을 굳히게 되고, 자연스럽게 포기하게 됩니다.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정답은 간단합니다. “쓰고 싶은 걸 쓰게 하자”
일단 아이들의 삶과 친숙한 주제여야 합니다. 과연 환경보호와 양성평등을 일상에서 몇 번이나 접할 수 있을까요?
대다수 학생은 집, 학교, 학원 거기에 피시방, 노래방 정도의 일상을 반복합니다. 대부분의 경험은 학교에서 일어난다고 봐도 무방하죠. 주제도 여기에서 가져오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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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똥을 싸도 되는가”
제가 글쓰기 첫 수업 할 때 항상 제일 먼저 사용하는 주제입니다. 일단 아이들이 똥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생까지 웃는 데만 5분을 훌쩍 넘깁니다.
그리고 눈빛이 달라집니다. ‘저런 걸로 어떻게 글을 쓸 수 있다는 거지?’하는 호기심과 걱정이 가득한 얼굴을 보면서 확신합니다. 이미 수업은 성공이란 걸요.
아이들은 할 말이 많습니다. 똥을 한 번도 안 싸 본 사람도 없을뿐더러, 언뜻 쉬운 주제이지만 깊이 들어가면 심오한 철학까지 나오기 때문이죠.
찬성 측 의견으로 “생리현상이다”, “학교에 변기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등 나름 예리하고 분석적인 주장이 나옵니다. 반대 측 의견은 “학교 변기는 적은데 사람은 많아서 위생적이지 않다”, “애들에게 놀림거리가 된다” 등 역시 설득력 있는 의견을 제시합니다.
거기에 ‘애들이 놀릴까봐 참고 참다가 집까지 달려간 아찔 했던 기억’, ‘누군가 용변을 본 후 물을 내리지 않아 당황했던 기억’ 등 자신의 사소한 경험을 더하면 그야말로 살아있는 글쓰기 재료가 됩니다.
아이들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주제, 쉽게 말해 ‘모두가 할 말이 많은 이야깃거리’가 글의 주제로 가장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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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과정 자체를 즐기며 공부하기
달리기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에게 처음부터 42.195km 풀코스를 완주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일단 운동화 끈을 묶는 법을 배우고, 자기가 좋아하는 운동복을 입고 당장 뛰쳐나가 동네 한 바퀴를 돌 수 있는 체력이 될 때 비로소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습니다.
모든 배움이 그렇듯 과정 자체를 즐겨야 오래도록 지속할 수 있습니다. 당장 잘 깎은 연필을 한 손에 움켜쥐고, 흰 종이 위에 머릿속에 흩날리는 나의 생각과 경험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적어봅시다.
지금 여러분은 인간이 손으로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아름다운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꾸그에서 글쓰기를 비롯해 북토크, 토론, 인문학 등 다채로운 주제로 아이들과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수업이 그저 딱딱한 공부가 아니라, 자신을 알아가는 재미있는 ‘과정’으로 다가왔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청소년 소설의 주제가 ‘성장’ 이듯, 수업을 통해 아이들과 제가 함께 성장하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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